요한 세바스찬 바흐와 헨델 생애 자세히 알려드립니다.

요한 세바스찬 바흐와 헨델 생애 자세히 알려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이번 글에서는 음악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요한 세바스찬 바흐에 대해 자세히 알려 드리겠습니다. 바흐의 생애와 대표곡이 무엇인지 자세히 알아 보도록 할까요?

 

 

1. 요한 세바스찬 바흐

바흐의 음악 인생은 지방 소도시에서 시작 되었습니다. 18세에 소도시 아른슈타트의 교회 오르가니스트로 채용 되었고, 23세에는 바이마르 궁정 오르가니스트로 취임 하였습니다. 28세에는 바이마르 악장으로 승격되어 약 1250만 원의 연봉을 받았습니다.

 

32세 나이에 다시 이직해서 쾨텐의 궁정악장, 즉 그 도시에서 음악가로서 오를 수 있는 최고 지위에 앉게 되었습니다. 그가 받은 연봉은 약 3천만 원으로 당시 궁정 음악 예산의 1/5에 달했다고 합니다. 그 후 38세에 마지막 이직을 한 바흐는 라이프치히의 성토마스 교회 칸토르에 임명 됩니다.

 

바흐

 

죽기 전까지 27년간 자리를 지켰던 칸토르의 연봉은 약 750만 원으로, 바로 전에 몸담았던 쾨텐의 궁정악장에 비하면 꽤 적은 액수 였습니다. 바흐의 급여는 많은 편이라고 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다양한 부수입으로 가정을 꾸려 나갔습니다. 장례식이나 결혼식에서의 음악 연주, 악보 판매, 개인 레슨, 파이프오르간 연주와 악기 개량에 관한 자문료, 쳄발로 대여료 등이 있었습니다.

 

또한 라이프치히에서는 예술가들의 사교의 장인 커피하우스에서 정기적으로 열린 콘서트에 참여하여 출연료를 받기도 했습니다.

 

 

2. 바흐 - 생애

바흐의 명성은 사후에도 계속 이어져 19세기 이후에는 마치 신처럼 떠받들어졌습니다. 오늘날에도 바흐는 상당히 위대하고 인기 있는 작곡가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콘서트의 전체 프로그램을 바흐의 곡으로만 구성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음악의 아버지인 바흐와 음악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헨델은 동시대를 살았지만 평생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습니다. 두어 번 정도 바흐가 헨델을 만나러 가거나 사람을 보내 만나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지만, 만남이 성사되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다음으로 음악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헨델의 생애에 대해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3. 헨델 - 음악의 어머니

헨델은 25세에 하노버 궁정악장으로 취임 했습니다. 연봉이 약 7500만 원으로, 이때 이미 바흐가 받아보지 못한 연봉을 받았습니다. 1727년 영국에 귀화한 헨델은 약 40여 년동안 수많은 오페라와 오라토리오를 작곡 했습니다.

 

당시 오페라는 대부분 신작이었습니다. 대중의 사랑을 받는 작품은 흥행에 성공해서 오랫동안 상영되지만, 인기 없는 작품은 금세 무대에서 내려졌습니다. 하지만 오페라 자체는 혹평을 받더라도 거기에 쓰인 음악이 인기를 얻으면, 음악 작품만으로 연주회가 열리거나 출판되기도 했습니다.

 

헨델

 

말년의 10년 동안은 인기가 시들해진 오페라 대신 오라토리오 작곡에 몰두했고, 헨델의 선택은 대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헨델과 바흐는 나이가 들면서 시력이 나빠졌습니다. 같은 안과의사에게서 미심쩍은 치료를 받고 둘 다 완전히 실명하고 말았습니다.

 

심지어 바흐는 그대로 사망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평생 결혼하지 않은 헨델은 사생활도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유언장을 통해 유산을 명확하게 분배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 합니다. 헨델은 주로 대규모 작품을 작곡해서 한번 연주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과 비용이 필요합니다. 그런데도 세계 곳곳에서 여전히 연주되고 있는 것을 보면, 헨델이 대단한 작곡가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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